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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29일 문화일보 - 바람과 어깨동무 낭만의 비행

조회 수 701 추천 수 0 2006.02.19 21: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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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어깨동무 `낭만의 비행` 열기구
[속보, 생활/문화] 2003년 05월 29일 (목) 10:09


하늘을 나는 항공스포츠의 고전은 열기구다. 1783년 프랑스의 몽 골피에 형제가 개발하고 파라드레 디 로제라는 모험심 많은 사람 이 따뜻한 공기를 가득 채운 자루 밑에 몸을 실어 처음 하늘을 비행했다. 우주선과 위성이 날아다니는 세상이 됐지만 열기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커다란 풍선 안에 공기를 데워 하늘 을 난다.몽골피에 형제는 종이로 만든 구피(풍선부분)에 밀짚과 나뭇가지를 태워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었지만 지금은 특수나일론 구피에 액화석유가스(LPG)와 버너로 공기를 데운다.
기계적 장치라고 해봐야 버너와 LP가스통이 전부인 열기구는 자 연의 하늘에 가장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수단이다. 바람 부는 대로, 바람의 속도로 천천히 움직인다. 날렵한 자동차의 자극적 스피드나 초음속 여객기, 초고속 전송망이 말해주듯 속도전이 시대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세태를 무시하듯, 어차피 우리가 사는 속도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듯 열기구는 천연덕스 럽게 느릿느릿 하늘을 비행한다. 느림의 미학이 따로 없다.^ 하늘에 둥실 떠서 바람을 찾아가는 낭만은 분명 매혹적인 것이다 . 하지만 축구공 형태의 구피를 갖춘 열기구를 직접 설계하고 제 작한 열기구 조종사 허민식(35)씨는 열기구 비행이 세상사와 크 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바람을 찾아 떠다니는 하늘 여행은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 이리 가면 바람은 저리로 방향을 바꾸고, 저리 쫓아가면 바람 은 또 다른 데로 달아나고.”

#커다란 풍선불기 지난 중순께 허씨의 승합차를 타고 경기 여주의 강변관광지에 도 착한 시간이 오전 5시. 승합차 뒷문을 열고 LPG연료통 4개, 버너 , 송풍기, 구피, 바스켓 등을 꺼내 땅바닥에 펼쳐놓는다. 그새 사위가 벌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쪽 하늘에는 엷은 구 름띠 한 가닥이 맑은 하늘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허씨가 아이들이 갖고노는 고무풍선에 헬륨가스를 넣어 하늘로 띄운다. 바람의 방향을 알기 위해서다. 담배를 피워물고 담배연 기가 흘러가는 방향도 알아본다.

바람방향을 파악한 뒤 본격적인 이륙채비를 한다. 사람이 타는 사각의 바스켓 귀퉁이마다 연료통 네 개를 단단히 매고 바스켓 위로는 강철줄이 달린 기둥 4개를 세운뒤 버너를 단다.

버너는 연료통 호스와 연결시킨다. 바스켓을 넘어뜨린 뒤 그 앞 의 땅바닥에 구피를 길게 늘어뜨려놓고 기둥 4개와 연결한다. 이 제 구피에 바람을 불어넣을 차례다. 구피의 입구에 모터를 단 송 풍기를 틀어 바람을 일으키고 어느 정도 구피가 부풀어오르면 버 너를 점화해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다.

땅바닥에 누워있던 구피가 차즘 통통해지면서 공중으로 떠오를 때 바스켓도 일으켜 세운다. 이제 이륙준비는 끝났다. 바스켓에 서 구피 끝까지 길이는 25m. 구피 폭은 12.5m. 2~3명이 타기에 적당하다. 이 거대한 풍선 밑에 매달린 바구니 안에 사람이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원시의 비행 버너의 불꽃이 가열되면서 구피가 팽팽해지자 바스켓이 지표면에 서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천천히 이륙한다 . 나뭇잎을 살짝 스칠 때 비로소 하늘로 뜨고 있다는 것을 실감 한다. 점점 멀어지는 땅, 남한강이 아래에서 유유히 흐르고 강 넘어 멀리 여주 신륵사의 전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열기구가 100m, 200m, 250m…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경치 감상보 다 고공의 공포감이 밀려온다. 공포는 시각보다는 상상 속에서 피어오른다. 혹시 버너가 고장나서 불이 꺼지기라도 한다면, 가 스가 새기라도 한다면, 멀쩡하던 구피가 갑자기 찢어지기라도 한 다면… 아래로 추락하겠지.

겨우 이 정도 높이만 올라가냐는 듯 짐짓 태연을 가장하며, 공포 의 상상을 쫓기 위해 질문을 한다.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 나요?”

허씨는 왜 질문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씩 웃는다. “산소마스크 만 있으면 5000m 이상도 올라가죠. 그런데 그 높이면 비행기 타 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주위에는 하늘밖에 없거든요. 300m 정 도 높이에서 지상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어요.”

열기구는 여주 남한강변을 따라 유유자적 흘러간다. 비행기 탈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툭 터진 공간에서 하늘을 처음 날아 보는 기분. 지구라는 행성에서 잠시나마 떠있다는 해방감이 찾아 온다. 우주에 로켓을 쏘아올린다고 자랑하는 지구도 결국은 셀 수 없이 많은 행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고, 그 조그만 행성의 수 많은 생명체는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 잘난 체하고, 싸우 고, 부대끼며 살아가다 사라져간다. 그 곳의 지표면에서 잠깐이 나마 떠나있다는 기분은 짧아도 즐길 만한 것이었다.

연료통 4개중 1개는 비상용으로 남겨두고 3개의 가스를 다 소진 하는데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 이동거리는 대략 10km다. 열기구는 버너의 밸브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껐다 하면서 조종, 수직 상승·하강만 할 수 있을 뿐 수평상태에서 방향을 조종할 수 없다. ‘바람의 의지’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고도에 따 라 바람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능숙한 조종사는 원하는 방향의 바람을 찾아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것이다.

열기구는 새벽과 저녁 무렵에만 탄다. 햇볕을 적게 받을 때 기류 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는 뜨거워진 공기로 상승기류가 생겨 뜻하지 않게 열기구가 기류에 휘말릴 수 있다.

“오늘은 멀리 못갈 것 같습니다. 강변 말고는 착륙지점을 찾을 수 없어요. 모내기를 위해 대부분 논에 다 물을 채워 내릴 데가 없거든요. 강변도 만만치 않겠어요. 올봄엔 비가 많이 내려 강물 도 불었어요.”

허씨는 모처럼 취재를 나왔는데 비행을 멀리 못가 미안하다는 표 정을 지었다. 허씨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항 공스포츠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는 것이다. 자연을 무시하고 오만해진 인간은 위험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다. 인간이 아는 자연의 범위, 그 안에서만 인간은 자연과 하나 가 된다. 그리고 안전이란 ‘100% 안전’을 뜻해야 한다. 열기구 를 100번 탄 중에 99번 안전하면 뭐하나. 1번의 사고로 모든 게 끝장일 수 있는데.

열기구는 추수가 끝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제철’이다. 바람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센바람 속에 들어 가도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은 속도감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겨울에도 쉽게 탈 수 있다. 구피에 뜨거운 공기가 채워져 있고 버너에서 나오는 열이 있어 춥지 않다.

#다시 수고의 땅으로 신륵사 앞 강변으로 열기구는 착륙지점을 잡았다. 이륙한 지 30 분 정도가 지났다. 버너의 불을 끄고 천천히 내려간다. 땅에 닿 는 것도 충격이 거의 없다. 보다 넓은 공터로 가기 위해 버너에 다시 불을 붙여 바스켓을 살짝 띄우고 한 사람은 내려서 바스켓 을 민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륙지점에서 승합차를 몰고 열기구 를 쫓아와야 했다. 일행이 모두 열기구를 탔을 경우 착륙한 뒤 택 시 등을 잡아타고 이륙지점으로 가서 승합차를 다시 몰고와야 한 다. 열기구를 분해해 승합차에 싣고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출발 시켰을 때도 오전 8시가 채 안되었다. 새벽녘 잠깐의 단꿈처럼 열기구는 하늘을 날았고 바람이 다시 우리를 데려다 준 곳은 일 상의 양식을 얻기위해 땀흘려야 하는 땅 위였다.

여주〓마태운기자 matw@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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