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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연합 2003년 12월호 - 구름 위의 산책, 열기구

조회 수 740 추천 수 0 2006.02.19 21:40:07
Minsik *.153.34.233




"하늘에서 만난 느림의 미학"

단오나 정월 초하룻날 제대로 널뛰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열기구의 이륙 느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열기구는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트처럼 갑자기 솟구치진 않았다. 버너로 데워진 뜨거운 공기가 구피 안에 가득 차자 사뿐히 지표면을 차고 올랐다. 부드럽게 탄력을 받아 널을 뛴 상태 그대로 하늘 위로 나는 기분. 가슴이 탁 트이는 희열이 몸을 뚫고 지나갔다.

열기구는 땅 위에 남은 이들과 인사말을 주고 받으며 점점 멀어졌다. 버너가 10여초에 한 번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꽃을 일으키자 100m, 200m, 300m 등 고도계가 신호음을 울리며 높이를 알려 왔다. 아래에서 손을 흔들던 이들이 장난감처럼 보이자 꽤 높이 올라 왔음이 실감됐다. 멀리 강물과 산자락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열기구는 수직이동만 가능합니다. 각 고도에 따라 변하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이용해 비행을 하는 거죠.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으면 고도를 바꿔 가며 길을 찾아야 합니다. 파일럿의 실력은 얼마나 정확하게 그 방향에 맞는 바람을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왕초보 승무원을 태우고 비행에 나선 파일럿 허민식 씨가 자신의 베테랑 경력을 은근히 내세우며 열기구 비행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아닌 게 아니라 한국에서 "열기구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로 꼽힐 만큼 열기구에 대한 애착이 컸다. 1996년 일본에서 첫 비행을 경험한 이후 매 주말 여주, 안성, 아산 등지를 다니며 열기구 타기로 보낸 탓에 결혼도 서른 다섯을 넘긴 지난 10월에야 올릴 수 있었다. 몇 년 전 최소 3000 만원 이상 가는 열기구를 구입하기가 힘들자 자동차를 팔고 적금을 깨 나일론 천을 사서 1년간 직접 재단하고 바느질해 자신의 열기구를 완성시킨 집념의 사나이다.

고도가 300m에 이르자 허 선장은 버너의 화력을 줄였다. 이제부터 바람에 모든 것을 맡기는 "하늘의 산책"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이 정도 높이가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발 아래 풍경이 가장 멋있게 보인다는 것이다. 열기구 비행은 산소통 없이도 3000-4000m 높이까지 가능하지만 그 높이에선 구름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산책비행은 말 그대로 바람에 열기구를 내맡긴 자유항해였다. 열기구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갔다. 이런 걸 유유자적이라 했던가. 열기구는 기류 안에 들어온 상태였다. 바람과 동시에 이동하기에 속도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뺨에 와 닿는 미풍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이따금씩 불기둥을 토해내는 버너 소리가 들려 올 뿐 사방이 고요했다.

바람과의 동행은 최근 유행하는 조류인 "느림의 미학"과 맥이 닿았다. 조악한 패스트푸드 같은 일상에 젖은 도시인에게 이보다 더 큰 여유를 선사할 유희는 없어 보였다. 이륙시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어느 순간 더 없이 평화로운 무념무상에 잠길 수 있었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떠가는 열기구처럼, 그렇게 순리에 역행하지 말자는.......

파일럿은 여유로와 보이는 가운데도 수시로 시간을 체크했다. 열기구 무게에 따라 연료통의 소진 시간이 다르기에 그 날 탑승인원이 몇 명이냐를 기준으로 비행 추이를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열기구는 2명이 탈 경우 1시간 30분간 약 10Km를 비행할 수 있다고 했다. 4개의 연료통 가운데 하나는 비상용으로 남겨 둔 상태로 말이다.

이륙한지 1시간 가량 됐을까. 파일럿은 착륙을 준비한다고 알렸다. 이후 불꽃을 조절하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지점에 내리기 위해 적당한 바람을 찾아 고도를 낮췄다.

사진 김주형 기자 / 글 장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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